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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시 반 비행기라 그래서 넉넉하게 10시 쯤 집에서 나왔다.

그냥 집에 가서 엎어지고 싶었지만, 어제 재워준 성의를 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오전에 중국집 배달 시킬만한 데도 없어 공항가는 내내 속이 울렁 거렸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시내에 차가 별로 없는게 다행이었다.

근데 그 웬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실 실실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을 하는 놈 같았다.

거기다 라디오에서 핑클 노래가 나오니까 "오! 예~" 하며 따라 부른다.

.....뭔가 잃을게 없는 놈 같아 보였다....

사고에 대비해 안전벨트를 꼭 움켜 쥐었다....


------백수--------

운전을 하고 가는데 자꾸만 새벽에 산발한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옆에 앉았는데, 얼굴을 봤단 너무 크게 웃을 거 같아서 앞만 보고 운전했다.

마침 핑클의 노래가 나오길래 웃음을 참으려고 크게 따라 불렀다.

도착해서 대충 신공항 건물 좀 구경하고, 국수 한 그릇 때리고 친구 녀석을 들여 보내는데 이놈이 수고했다고 봉투를 내밀었다.

안 받을라 했는데, 이 자식이 자꾸 "같이 데이트나 해." 하고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별로 고맙지가 않았다...근데 줄라문 저 인간 안 보는데서 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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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배....몰디브로 간단다.

말만 들어본 그 곳....나도 과연 그런 곳에 가 볼 날이 있을지.

생각만 해도 서러움이 자꾸만 복받쳐 올랐다.....ㅜ.ㅜ

근데 이 웬수는 신랑이 주는 돈을 자꾸 싫다고 거부하고 있었다.

빙시......확 내가 나꿔채고 싶었지만 체면 땜에 참고 있었다.

돌아 오는 길에....둘이 있으니까 쪼끔 썰렁했다.

아....지금 이 길이 신혼여행의 길이라면.....물론 저 녀석이 아닌다른사람과....

아파트 관리소에 차 열쇠를 맡기고 나더니, 녀석이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사내자식이 그렇게 용기가 없어서....

데이트 하고 싶음, 하고 싶다고 말을 하던가...

분명히 영화 한 편 보자고 얘길 할 거 같았다.

음....볼 까 말 까......하긴 아까 받은 돈도 있으니 아까워서라도 봐야 되겠지.

근데 이 자식이 한다는 말이......

"저기요.... 요 근처가 충무로 잖아요..."

"근데요?"

"여기 돼지 껍데기 죽이게 하는데가 있는데, 우리 껍데기나 먹으러 가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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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걍 집에 가고 싶었지만, 돈 땜에 그럴수도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에이, 이 자식은 5만원 줄거면 그냥 주던지.

뭘 봉투에다 넣고.....

하는 수 없이 껍데기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근데....쫌 실망한 눈치 같았다. 바부...껍데기가 얼마나 맛 있는데.

막상 들어가 앉아 맛을 보더니 나보다 더 잘 먹는다.....^^;

어제 간만에 술 맛을 봤더니 오늘은 오후부터 술이 땡겼다..

역시.....술은 쉬면 안 된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얘는 어제 많이 먹어서 안먹을 줄 알고 "안 드실거죠?" 했더니 한 잔 달란다.

.....그래 차라리 빼는 여자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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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했지만 이 자식이 자꾸 맛있는 거라고 벅벅 우겨서 따라갔다.

가게도 어디 꾸시시 한데로 끌고갔다. 수 틀리면 확 엎어버리리라 맘 먹었다.

근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첨 먹어보는 거였지만 굉장히 고소하고 씹는 맛도 좋았다.

녀석이 "거봐요~~ 등소평이 그것만 먹었다니까요." 하고 자랑을 했다.

확실히 입맛이 도니까 짜증이 봄눈 녹듯 확 가라 앉았다.

아...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매너도 있는 놈 이였다. 의자를 빼주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맞춰주고 그 밑에 냅킨까지 깔아 주었다.

고기도 잘 구워진 것은 내 앞으로 밀어주며 드시라고했다.

그래서 안 마시려던 술을 한 잔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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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생에 웨이터 였나 보다.

어디 들어가서 앉기만 하면 자동으로 세팅을 해야 직성이 풀리니...

고기도 남이 뒤집기 전에 내가 먼저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근데 이상했다.

아까 그렇게 생각이 나더니 몇 개 먹고 나니까 별루 땡기질 않았다.

아무래도 입덧을 하는 거 같았다....-.-

그래서 걔한테 다 밀어줬더니 우걱우걱 잘도 씹는다. 배가 몹시 고팠나 보다....

난 술이 고팠나 보다....따끈한 어묵 국물에 소주가 잘도 넘어갔다.

약기운이 조금씩 도는거 같았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 고민이 됐다.

....짤린 직장을 댈까.....아니지 재수씨가 저 녀석 논다고 말해 버렸으면 어쩌지....

젠장 이래서 여자 만나는게 싫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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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하시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내 처지 땜에 그럴수도 없었다....ㅜ.ㅜ

짤리기 전에 내 발로 걸어 나올 때는 내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땐 정말 괴롭다....ㅜ.ㅜ

어느덧 소주가 2병이 비워져 가고 있었다.

이제 결혼 한 애 얘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름기를 먹어서 그런지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났다.

근데 저 놈이 그냥 집에 간다 그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수 엄씨 캔맥주나 사들고 가서 신세한탄을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우울한 상상을 했다.

근데 놈이 맥주 한잔 어떠시냐고 물어본다. 당근 O.K 였다!!

아차차....넘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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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먹자는거 빼지 않고 잘 먹는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 다시 안 볼 앤데....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고 헤어지자고 했다.

내 전공 분야였다.

시원하게 500 한 잔 원 샷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젠장....내 친구들은 1000 짜리도 원 샷 하는데.

네잔 째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데 띵~ 했다...

아무래도 어제 한 잠도 못 자서 그런 거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눈이 퀭 했다. 으~~ 저 웬수....

그래두 얘기를 나눠보니 괜찮은 애 같았다....근데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회피하니까 자꾸 대화가 빙빙 겉도는 거 같았다.

하긴 내가 노는데 쟤가 보태준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었다.

자리에 돌아가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나 백수 생활한지 6개월 째라고.

순간 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자기는 회사 나온지 2년 넘었단다. 백조란다.....그랬구나.....



한바탕 웃고.......노는 사람들끼리 뭐가 좋다구.... 몇 잔을 거푸 들이 마셨다.

그리고, 오늘은 내가 필름이 끊어지고 말았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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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500을 원 샷 하는걸 보니 내 학창시절이 기억났다.

지금은 체력이 딸려 안된다.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셨다....자식이...어제 좀 그렇게 마시지.

나 한잔 마실 동안에 500을 네잔이나 먹더니 화장실에 물을 빼러 갔다.

그 틈을 이용해 집에 전화를 때렸다.

"엄마 나야."

"어~ 왜?"

"엄마는.... 딸이 전화 했는데, 어, 왜가 뭐야. 걱정도 안 돼?"

"어제 은미가 전화해 주더라...너 자고 온다고."

"아유, 알았어. 끊어. 쫌 있다 갈께."

슬펐다.....이젠 체념한 듯, 초연한 엄마의 목소리가 날 아프게 했다....ㅜ.ㅜ


근데 놈이 화장실에 갖다 오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날 똑바로 쳐다봤다.

무슨 약물을 투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여....물어 볼게 있는데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는 집에 가서 먹었어야 하는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ㅜ.ㅜ


"제가 뭐 할 거 같애요?"

".........??"

"제가 사실 놀거든요. 회사 짤린지 6개 월 됐어요."

"예....."

"근데 제 얘길 안하니까....그 뭐랄까....웬지 답답하더라고요. 뭐,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더라구요. 누근가를 만나서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하는데.....괜히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도 같고요. 그냥 저에 대해서 솔직하고 싶네요."

"아......예."


솔직히 의외였다. 은미 그 기집애도 그런 얘길 안 해줘서. 하긴 물어볼 틈도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한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식, 근데 벌벌 떨면서 얘길하냐...^^ 무슨 큰 죄 지은 것 처럼.

내 얘길 할 까 말 까.....?

그래 나도 솔직해 지자.


"저겨....짤리신지 6개월 됐다구요?"

"예?...아 예. 그 뭐..곧 일 들어가야죠."

요놈아...^^ 직장 잡기가 그렇게 쉽냐...그럼 내가 2년 넘게 쉬고 있겠냐....

"사실 전..... 짤린지 2년 넘었어요."

미쳤나 보다...이런 말을 이렇게 쉽게....

"예?!!!"

아~ 그자식 사람 민망하게.....

"사실 저도 백수 아니 백조예요."

"......................"

이 자식이 왜 이러나.......


"푸하하하하~~~ !!!!"

"아우,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악수 한 번 합시다! 아~ 사람이, 진작 얘기하지...암튼 반갑습다!!"

웃긴 놈이 였다.....뭐가 그리 좋다구.



암튼 홀가분한 맘으로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사람은 거짓말 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놈이 백수라는 걸 털어 놓으니까 엄청 홀가분 하긴 했나보다.

술을 마구 들이 부었다....그러더니.....그냥 잠들어 버렸다.

마치 삶의 모든 긴장을 일순간에 놓아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좀 안 돼 보였다.....하긴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놈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걱정이었다.

간신히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힘이 딸려서 잠시 계단에 앉혔다. 웬수가 내 어깨에 기대어 다시 잠이 들었다.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은데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다.

잠시 그대로 있었다. 가볍게 코를 골며 자는데 깨우기가 미안 할 정도로 곤히 잠들어 버렸다.

왠지 모를 측은함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낄낄거림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쩍 팔려따.....

놈의 핸펀을 꺼내서 집전화번호를 찾아 봤는데 아무것도 입력된 것이 없었다.

고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꺼내 뒤졌다. 복권이 나왔다. 눈물났다....꿈도 야무지게 40억 당첨금 짜리였다.

근데 내가 막 지갑을 뒤지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무슨 빽치기 보듯이 했다.

간신히 수첩에서 집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여동생인거 같았다.

누구냐고 해서 얼떨결에 여자친구 라고 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듯 의심스러워 했다.


아무튼 집이 대림동 쪽 이라는 걸 확인하고, 여동생 보고 나와 있으라 그러고 택시에 태워 보냈다.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집까지 바래다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핸드폰에 찍힌 놈의 집 전화번호가 보였다.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이신 듯한 분이 받았다.

여보세요~~ 하시는데, 수화기 저 너머에서 "아우~ 오빠 정신 좀 차려~~"
하는 여동생의 괴성이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를 내려 놓았다.

길고도 험한 1박 2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