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한적한 시골의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허름한 초가집.
늦은 시간이지만 집안에서는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집 앞에는 작지만 정성스럽게 손질된 나무들과 꽃들이
예쁘게 정돈되어 있다.


방 안.
방 안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한분과 할머니 한분이
나란히 누워있다.
할아버지는 옛일을 회상하듯 먼곳을 바라보면서 말을 하고 있지만
할머니는 이미 잠에 빠져든듯 눈을 감고 있다.

할아버지 : 허허..그때 기억나오?
내가 할멈과 결혼하고 처음으로 회사에 출근할때..
넥타이를 못매서 허둥지둥 하고 있을때..
그 고왔던 손으로 정성스레 넥타이를 매줬었는데..
어렴풋이 생각나는구려..
그때가 참 좋았지...


할머니 : .....

할아버지는 말을 하고 난 후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짓고 다시 말한다.


할아버지 : 허허...새삼스럽게 그때일도 기억나는구만..
우리 첫째가 대학교 졸업할때..
둘째가 교통사고가 났었지..
그때 할멈 우는게 얼마나 서럽던지..
누가 보면 아들 세명 있는거 다 죽었는줄 알았을거야..
허허허...
그렇지?

할머니 : .....

할아버지 : 아..그때 기억나오?
막내가 대학 들어간다고 시험 준비할때..
당신이 시험 100일전부터 100일 기도한다구 그래서
나한테 많이 혼났잖소...허허..
그때 막내가 얼마나 밉던지...
시험치는날..
당신 잠도 못자고 다음날 눈 밑이 거뭇거뭇해져서
막내 바래다 주지도 못했다고 얼마나 힘들어했던지...
막내가 그래서 대학에 붙은게지...
당신 고생 때문에...

할머니 : .....

할아버지 : 허허...그때가 방금전처럼 생각나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려..

할머니 : .....

할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갑자기 생각난듯 다시 말을 잇는다.


할아버지 : 그때도 기억나는구만..
우리 큰딸..
결혼식날 당신 안운다고 그러더니 결국 눈물 몇방울 흘리는거 봤지..
당신 그때 이후로 우는걸 본적이 없는데..
그때 이후로는 눈물이 모두 말라버렸나...허허...

할머니 : .....

할아버지의 입가에는 계속 미소가 걸려있다.
예전의 기억을 조금씩 되살리면서 점점 현재까지 오고 있는지
입에는 미소가 보이지만 눈가에는 조금씩 눈물이 맺히고 있다.

할아버지 : 작년부터 당신 친구들하고 내 친구들이
점점 우리 곁을 떠났잖소..
그때부터인가..
당신 머리에도 점점 흰머리가 늘어나는것 같았는데..
친구들 장례식 갈때마다 당신이 점점 내손을 꽉 쥐었다는거 알아요?
허허...

할머니 : .....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점점 이슬이 맺히듯 눈물이 많이 고여간다.


할아버지 : 이제 내가 당신의 손을 꽉 쥘 차례구려..
지금까지의 인생길..혼자가 아니어서 참 행복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한마디 대꾸도 없구려..

할머니 : .....

할아버지 : 우리가 함께 걸어온 인생길..
떠나가기 전에 꼭 간직하고 떠나줬으면 좋겠구만..
임자..
잘가시오..
안녕히 잘 가시오..

아무런 말 없던 할머니의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작은 미소가 그려지며
할머니의 몸이 잠시 반짝 빛나는 듯 싶더니
다시 미소가 사라지고 잠든듯 편안한 표정만 남는다.

할아버지 : 고맙구려..정말 고마워...
내 금방 따라갈테니 잊지말고 기다려주구려...


할아버지의 왼쪽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한줄기 또르륵 굴러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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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년이 되었을때 작은소망이 있다면.
규석이보다 내가 먼저 갔으면 좋겠다..
근데 갑자기 이런생각하니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