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마디로 황당했다. 이런 말을 ‘대통령’한테서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고3아이의 ‘엄마 나 공부 못하겠어’하는 투정보다 못해서다. 솔직히 대다수의 국민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를 보는 심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켜보았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음에도 놀랍기 그지없다.

그동안 국민은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평검사들과 토론을 벌이며 맞장을 뜨는 순간도 아찔했다. 노무현대통령 스스로 ‘막가자’고 자청해 돗자리를 편 자리아니었던가? 게다가 나이와 더불어 그의 토론실력도 ‘청문회 스타의 똘똘함’은 물론이고 대통령후보 때의 ‘겸손한 논리’도 완전히 빛이 바랜채 파르르 떠는 성마름과 자기과시로 일관했다.

KBS문제를 갑자기 끄집어낸 국회에서 모습도 그렇다. KBS가 아무리 중요한 공기관이자, 방송의 덕에 대통령이 됐다 치더라도 무려 십여분 가깝게, 뜬금없이 국회라는 장소에서 그 문제를 꺼낸 배경이나 의도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아무런 배경도 의도도 없었다는데 국민은 더더욱 놀랐다.

개인적 답답함과 ’억하심정‘을 푸는 장소가 국회였다는 점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전 TV토론도 그렇다. 가뜩이나 먹고 사는 것이 고달프고 모든 것이 불안한 국민은 무엇을 원했던가? 설득당하고 싶었다. 은근하고 확고한 목소리로 국정에 대해 하나하나 이해를 구했던 루즈벨트의 노변정담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날 국민이 본 것은 개인적인 자잘한 섭섭함과 한을 풀지 못해 삐치고 핏대내고 열받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미국에 가서도 그렇다. 그나마 부시와 ‘토론’하자고 달려들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는 ‘휴대폰’처럼 나올까 걱정했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일단 후유-했다. 그러나 TV로 노무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자니 영 입맛이 썼다. 시시콜콜한 의전에 드러난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어설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매너나 품격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어떤 ‘골수 친미파’국민도 ‘미국이 아니었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는 둥 ‘동네 부랑배의 바지가랑이속을 기어간 한신’의 예를 드는 대통령을 원치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고 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기도 안찰 노릇이다. 우선 그 어떤 국민이 싫다는 그의 등을 떠밀어 ‘대통령 제발 하시라’고 강제로 시켰던던가? 어느날 갑자기, 별로 기대로 하지 않았건만 민주당 경선의 회오리속에 ‘대통령 해보겠다’고 나서 사람아닌가? 또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대통령 노무현’을 원치않았던 수많은 국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전 국민이 열망아래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시킨 대통령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노무현대통령이 잘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겨우 석달째인 지금 어떠한가? 대통령은 대통령을 못해먹겠다고 어깃장을 부리고 몇몇 장관들은 시위대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에서 걸려온 대통령전화조차 안받아도 그만인 전화처럼 무시되었다. 아파트 값을 잡겠다고 발표한 정책마다 부동산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웬만한 건물에 가면 현수막이 걸려있고 눈만 떴다하면 파업이고 투쟁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지않는 것이 좋았다. 이미 스스로 ‘대통령노릇 못해먹겠다’고 털어놓았지 않은가? 지역감정해소를 위해 고배를 예상하면서도 나왔던 ‘참신한 이념의 지역구 국회의원후보’에 충실해야 했다. 한나라의 국정을 담당하기엔 그의 역량이 부족하니 힘이 딸리니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것이다.

얼마전 신문에 보도된 대통령이 참석한 내각회의 내용을 읽으며 ‘이것은 대학 동아리 모임이구나’싶었다. 취미 활동내지는 잠시 들러 ‘경험’을 쌓기위한 목적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가볍고 쉽게 말할수 없는 사항들이었다. ‘대학 동아리 토론모임’이 대한민국의 내각회의였다. 무엇보다 대통령을 대하는 장관들 태도가 ‘동아리 회장예우’보다도 못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책임은 ‘만만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문희상 비서실장이 ‘Easyman'이란 표현에 그렇게 민감했던 이유가 여기 있다. 영어로 한풀이하는 대한민국국민들에게 굳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하기 편안한 상대‘라고 급전을 쳐가며 굳이 해석을 한 이유는 뭘까? ’측근들은 알고 있었다.얼마나 만만한 대통령인지를-그래서 그 비밀이 새어나가길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지도자는 결코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보통사람이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기대치 않았던 위기관리솜씨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이 안심하고 살수 있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지난 석달간 노무현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수없이 반문했다. 고집센 모습을 보자니 ‘ys를 뽑았나?’싶고, 미국에 가서 굽실거리고 사진찍는 모습을 보니 노태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꺼냈다하면 끝을 낼 줄 모르는 습관을 대하면 ‘전두환’을 떠올린다. 초장기부터 불거진 ‘형님관련 의혹’을 보자니 한 두명의 대통령이 아니라 수명의 대통령의 모습과 겹쳐진다. 대통령을 잘못뽑은 탓에 역사는 고난을 겪고 국민들은 고통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불안한 적은 없다. 적어도 그들은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날 ‘나 대통령 때려치우겠다’고 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잖은가? 세네카는 ‘용기있는 자만이 공직을 맡는다’고 했다. 이 중요한 시기의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최소한 비겁한 사람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전여옥(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