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대통령을 ‘씹느라’ 여념이 없군요. 이것도 민주화의 과일이겠지요? 흔히 하는 말로, 세상 참 좋아졌네요. ‘씹기’를 즐기는 분들은 자축할 일입니다. 대통령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이 금지되고, 단순한 말실수 하나 때문에 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재깍 바뀌어도, 못 본 척 외면하며 비굴하게 살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으니 말입니다. ‘그때 그 시절’에 비하면 얼마나 축하할 자유로운 세상인가요? 그것도 우리 손으로 이룩해낸 세상이니 말이지요.
물론, 나는 지금 ‘씹는’ 그들을 좀 ‘씹고’ 있는 겁니다. 아, 하지만 오해는 마세요. 대통령에 대한 비판 자체를 씹는 게 아니니까요. 대통령 스스로 권위주의의 청산과 토론 문화의 정착이 우리사회의 민주성과 합리성을 성숙시키는 중요한 열쇠의 하나라고 믿고 있고, 또 이를 전 분야에 걸쳐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듯한데, 왜 비판 자체를 문제삼겠습니까?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나도 좀 ‘씹고’ 싶어진 것은, 대통령을 비판하는 말들의 저 뻔뻔스러운 단순함과 막 나가는 무례함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그들을 별로 재미없게 ‘씹고’ 있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신나게 씹더군요. 이 ‘씹기’ 행사에는, 인터넷에서 특히 그러한데,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는 듯합니다. 전반전의 주인공은 당근 ‘이빨 좋은, 따라서 잘 씹는’ 논객으로, 그가 일단 대통령을 ‘마구’ 씹어 놓아야 하지요. 이때 논객은, 노대통령이 유행시킨 말로 하자면 우리 사회와 정치판의 다양한 ‘코드’를 섬세하게 고려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냥 일도양단으로 ‘단순하게’ 씹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후반전의 식탁이 풍성해지기 때문이지요.

후반전은 이분법 걸신들의 잔혹한 카니발이더군요. 지지하고 반대하고, 환호하고 야유하면서, 이 이분법 귀신들은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짝패로 거듭납니다. 전반전에 차려진 식탁 자체가 이미 그런 놀이터가 되도록 프로그램 된 것이건만, 후반전의 ‘참여’ 식객들은 ‘씹기’가 마냥 좋을 뿐이어서 그런 건 돌아보지도 않더군요. 당연히 이것은 탈권위주의도 토론도 아니며 단지 ‘좋다, 싫다’는 감정의 화형식일 뿐입니다.

대통령 하기 힘들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왜 그 난리들이지요? 왜 그것이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란 말이지요? 이 소란은, 우리가 아직도 우리의 내면에 만인의 굳건한 태양 같은 존재로서의 ‘지도자’를 ‘모시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그러니까 차라리, 나도 한 번 일도양단 해보지요, 이를테면 독재자여도 좋으니 절대로 속내를 내보이지 않고, 더구나 스스로 힘겨워하는 내색은 결코 하지 않고, 두꺼운 낯가죽 속에 교활하게 웅크리고 있는 자가 더 좋다는 말일까요? 그러면서도 민주주의의 과일만은 즐기겠다는 것인가요?

대통령은 ‘유별난’ 사람도, ‘특별한’ 사람도, 우리에게 없는 ‘별난’ 무엇을 가진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웅이 아니며,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대통령을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우리가 잠시 권한을 위임해 준 우리 중의 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그가, 마치 우리 모두의 불안하고 미숙한 내면을 거울로 비춰 보여 주려는 듯이, 자신의 고뇌를 드러내 보인 것이 그렇게도 잘못이란 말인가요? 고뇌의 표현을 대통령으로서 ‘만만하게 보이는 짓’이라는 식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주민으로서 성숙되지 못한 게 아닌지요.

혹시 겉으로 내놓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자신을 아직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미성년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이러다가, 미숙하고 불안한 우리의 자유를 차라리 동상처럼 근엄한 권위주의의 화신들에게 공물로 바치고 그 경직된 질서 속에서 안심하자는 주장, 간단히 말해서 ‘힘 센’ 군인들이 우리를 확실하게 ‘장악해’ 주었던 ‘옛날이 더 좋았다!’는 식의 정신병적인 소리를 듣게 될까봐 무섭습니다.

용감한 네티즌 여러분, 비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감정의 카니발을 조심합시다. 이것은 인터넷 시대의 신종 히스테리입니다. 그리고 제발 대통령에게 예의 좀 갖춥시다. 자유롭게, 법에 따라, 우리 손으로 뽑은 우리의 대통령을, 우리 자신이 옆집 강아지 대하듯이 막 대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서 온당한 인격적 대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결코 개들이 아닙니다.

이상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