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 그남자의 사정 #01



그여자의 사정

월요일이예요.
조금 설레이는 월요일이지요.
오늘은 다른날과 조금 다른 월요일이거든요...
새롭게 얻은 직장에서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니까요...
남들은 제가 큰 회사로 스카웃 됐다고 축하한다고 난리법석인데 전 뭐 그정도까진 아닌것 같구요...
월요일 아침인데도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네요.
사무실까지 시간은 충분하겠네요.
자꾸만 제 차 옆으로 조그맣고 꼬지지한 차 한대가 힐끔힐끔 끼여드네요. 뭘봐. 이쁜여자 첨봐?
남자들이란 이쁜 여자만 보면 어쩔줄을 모른다니까요...
호호호
가볍게 무시하고 추월했지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거야...
빤간 차에 빨간 핸들, 그리고 빨간 립스틱이 조금 튀는거 같지만 괜히 오늘은 평소 보다 더 튀어보이고 싶었어요. 첫 출근이잖아요.
내가 가서 일하게 될 사무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몇일전 눈 인사만 먼저했지만 뭐 그리 대단한 사람도 없어 보이던데...
대학을 졸업한지 3년째가 됐네요.
남들은 저를 보고 부럽다고 하던데 전 아직 멀었다구요.
결혼요? 전 그런거 안해요. 여자 스스로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걸 보여줄거라구요.
결혼 못하는거 아니냐구요?
천만에요... 전 결혼을 안하는거라구요.



그남자의 사정

월요일...
사람들이 북적이는 만원 지하철 속에서 일주일을 시작한다. 그래 또다시 시작이다.
유난히 월요일 아침 출근 전철은 사람이 많다. 앉을 자리는 고사하고 제대로 서서 갈만한 공간도 없다. 다리는 이쪽에 팔은 저쪽에 가방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내 앞에 어떤 못쉥긴 여자가 자꾸만 내쪽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저 눈빛은 꼭 치한을 바라보는 듯한 눈초리... 걱정하지 마라. 당신같이 얼굴이 무기인 사람은 트럭한가득 뎀벼도 싫다.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대롱대롱 매단채로 대한독립 만세를 했다.
월요일부터 험한꼴이다.
이 전철 운전수는 전직이 시내버스 운전이 었나보다.
거의 운전수준이 마구잡이 시내버스 운전이랑 똑같다.
차를 사던가 해야지...
어젠 괜히 부모님 계신 집을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효도좀 하려구 했더니 역시나 장가 빨리가라는 쿠사리만 먹고 왔다. 부모님이 은근히 걱정하시는 눈치다.
내가 어디 하자가 있어서 여자가 없나 하시는거 같다...
다큰 나이에 엄마 아부지에게 직접 확인시켜드릴 수도 없고... 죄없는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다 돌아왔다.
부모님 앞에서 난 결혼하기 싫다고 말씀드리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끔찍하다. 119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두들겨 맞을것이 뻔하기 때문에.
가만있자... 이번주엔 무슨일이 있더라...
신년 전략회의가 있구나. 에구 이번주도 편하게 지나가긴 틀렸구나...
앞에 여자는 자꾸만 날 쳐다본다. 이거 안보여 당신때문에 만세하고 있는거?
스타일 다 구겨지네.



그여자의 사정

예전에 한번 보았던 사람들인데도 무척 낮설어요. 이젠 내가 이곳에서 이 사람들과 싸우면서 보내야 하는건가요?
물론 모두가 제 상대는 안되겠지만요.
여사원은 별로 없네요. 제가 좀 튀겠는걸요. 하긴 여자들이 있다고 제가 죽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사람들의 주목을 너무 받는것 같아 쪼금 부담스럽네요.
홍보 담당 이사님은 왜 눈을 게슴츠레 뜨고 절 보시나요. 나이든 남자. 주의해야 할 첫번째 대상이죠.

"안녕하세요. 신희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전번 회사에서 아주 탁월한 사원이었다는 소릴 들었는데
이곳에서도 열심히 잘 해주기 바랍니다..."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신 쓸데없이 추근대지 마시라구요.

제가 일하고 있는 홍보 1팀 옆에 홍보 2팀 사람들이 있네요. 저쪽도 뭐 별루쓸만한 사람은 없어보이는군요. 대충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했어요.



그남자의 사정

월요일 아침부터 왜이렇게 시끄러운거야. 사람이 하나 새로 왔구먼. 어라. 여자네.
홍보 1팀이 요즘 한가한가 부지? 여자한테 시킬일도 있구. 누군 뼈빠지게 일하는데 누군 여자만 늘어나서 노닥거리겠구먼. 근데 저여자 무슨 옷을 저렇게 입었지?
지가 무슨 앙드레김 딸이라도 돼나? 저런 여자는 대개 6개월도 못견디고 나가기 일쑤지
이런 중견기업에 들어왔다는 명함 하나 받으면 땡인 여자들...
저런여자 때문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안되는거라구...

"김영철씨... 여기 인사하지... 이번에 홍보 1팀에 새로운분인데..."

"안녕하세요. 신희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꽤 당돌한 아가씨군. 첨보는 남자한테 이렇게 손까지 내밀면서 악수를 청해야
하는건가?

"김영철입니다."

손을 내밀어줄껄 그랬나? 내민 손이 부끄러운 모양이군. 대신 한마디 해줘야겠다.

"잘 해보십쇼"

"녜?"

열심히 하란 소리를 할려구 했는데 웬 잘해보라는 소리가 나오지? 에라 모르겄다.
저 여자한테서 싸늘한 바람이 부는군.

"열심히 하시라구요"

"녜. 그러죠"

눈하나 깜짝 안하네. 참 요즘 여자들은 무섭단 말야...




그여자의 사정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죠? 숙녀가 악수를 청하면 받아야지 혼자 멀뚱멀뚱 쳐다보는건 또 뭐죠? 기가 막혀서...
그리고 잘해보라니. 그럼 내가 뭐 하나라도 못할거 같아요? 뭐 정말 이런 사람이다 있어.
이런 사람한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구요.
그래도 오늘은 내가 참아야죠.
첫날부터 얼굴 구길일 만들면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두고봐라...

오후에 회사 업무 소개 및 홍보팀 업무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큰 회사라서 그런지 조직적으로는 상당히 탄탄하네요.
그래도 이 신희정한텐 어림도 없다구요. 기대하시라 이 신희정의 활약을...

영철인지 뭔지하는 사람은 사무실 제일 구석자리에 앉아서 무슨일을 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네요. 혼자 구석에 처박혀서 놀기나 하겠죠.
칫, 이름도 유치하지. 영철이가 뭐야 영철이가... 꼭 초등학교 국어시간 같네요.
영희야 철수야 나가서 놀자. 영철이도 놀자. 딱 어울리네요.
그러나 저러나 제 자리에서 화장실을 가려면 저 영철이란 사람을 지나가 하는게 조금 껄끄럽네요.
지금도 화장실 가고 싶은데...
일부러 옆으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걸어갔어요.
힐끗 한번 눈을 흘겨서 영철이란 사람을 쳐다 보았어요. 턱을 괴고 모니터만 쳐다보던 사람이 지나가는 저를 쳐다보네요. 그래도 질 수 없죠.
저사람 눈동자가 저를 따라오는걸 느꼈어요. 참 별난 취미도 다 있네요. 화장실 가는 여자 째려보는게 취민가 보죠?
콧방귀를 한번 힝 끼어주고 화장실로 들어갔어요.



그남자의 사정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냐. 화장실가는게 자랑인가? 째려보기는 왜 째려봐.
내가 뭐 화장실 기웃거리며 엿보는 치한이냐? 그러고 보니 아까 전철에서 자꾸

째려보던 여자랑 많이 닮은것 같다. 큰일이다 요즘엔 자기 잘난줄 생각하는 여


자꾸만 늘어나서... 그런 사람들이 어서 빨리 제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푸하하...
저여자 자기 스타킹 빵구난거 알구 있을까...
화장실에서 나온 이 여자 뒷굼치에 자기 주먹만한 빵꾸가 나 있다.
지금 가서 얘기해 줘야 하는거 아닐까.
에라 그냥 냅두자. 창피하면 자기가 창피하지 뭐...

그런데 자기도 눈치를 챘나 보다. 자리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는걸 보니.
손에는 조그마한 것을 쥐고 가네. 저게 뭘까. 뭐긴 뭐야 스타킹이지.
후다닥 뛰어가는 그여자 눈과 다시 딱 마주쳤다. 씨익 웃어줬다. 내가 왜 웃는

저여잔 모르겠지?
우하하 꼬시다... 잘난척 하더니. 내 그럴줄 알았다.


그여자의 사정

아이참... 첫 출근날 이런일이 있다니... 갑자기 평소엔 잘 나가지 않던 스타킹이
왜 오늘따라 커다랗게 구멍이 났을까요. 그래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것 같아서
다행이예요. 옆자리에 앉은 동료에게 급히 하나를 빌렸어요.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는데 저 남자가 저를 보고 알수없는 웃음을 씨익 웃고 있네요.
내가 뭐 자기 보구 싶어서 자꾸 왔다갔다 하는줄 아나보죠?
그런데 웃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네요. 제 스타킹을 본걸까요?
내 깨끗한 이미지에 이게 웬 날벼락이람...
오늘은 그냥 빨리 집으로 가야 겠어요.
자꾸만 저 남자의 묘한 웃음이 걸려요. 혹시 봤으면 어쩌죠?
물어내라고 그럴수도 없고...
자꾸만 저 음흉한 웃음이 걸리네요. 뭐 제가 이쁜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저정돈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긴 하지만요.



계속